교육자 집안에서의 성장은 세계를 꿈꾸게 하다
금병찬 대표는 가정환경부터 학자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젊은 40대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셨어요.
청산이라는 곳 시골학교 사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존경받았던 아버지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그야말로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과 산과 들로 파충류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시골이라서 밤에는 늑대가 나온다는 소문도 쟁쟁했다.
그런 소문 때문에 늦도록 불빛을 밝히며 아버지가 노심초사 기다리고 계셨던 일, 교장선생님의 아들 덕분에 두루두루 총애를 받으며 철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그 후 어머니와 대구로 유학을 나오면서 그 행복했던 환상은 단방에 깨지고 말았어요.
전학 온 첫날부터 분단장이 되었고 받아쓰기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던 터라 그 방법을 몰랐기에 몇 번 백지를 냈더니 더 이상 분단장을 지키질 못 했어요.”
“학창시절의 추억은 대구인 도시에서의 추억보다도 아버지가 계신 시골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내 어린 시절은 부족함 없이 천진난만하게 살았던 시골촌놈이었습니다.
”대구로 전학하여 친구들과의 관계형성과 도시에서의 생활을 적응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수재인 형님은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이 되었고 외국 다니는 것이 부러워서 나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영어에 매진하게 되었고 대기업체인 종합무역상사에 취직을 했다.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 초였으니까 무역업체 직원이었던 관계로 상용여권으로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내세울만한 상품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해외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일본사람, 일본말, 일본상품, 일본간판들이 판을 치고 한국 사람을 보면 단방에 일본 사람으로 착각하였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부강한 나라로 전 세계에 좋은 상품을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면서 “그러면 나도 국가 일을 해야 되겠다.” 라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금대표는 무역을 하면서 정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계기 되었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창립하여 중소기업으로써 우량회사로 성장시켰다.
준비 없이 시작한 사업, 그 답은 쓰디쓴 물이다.
자신감이 컸다. “무엇을 하든지 하면 되겠지”라는 젊은 패기의 막연한 생각으로 생활터전이 탄탄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전 재산 1억을 털어 준비 없이 시작했던 사업은 수입한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단계를 전혀 몰랐기에 겨우 1년 만에 빈털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장난감가게에서 나오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난 도대체 아이들에게 장난감 하나 사 줄 수 없이 전락하고 말았구나.
그 순간 몹시 막막하고 비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 재취업을 다시 시작한 곳이 바로 안산 반월공단의 중소기업체인 자동차부품 회사였다.
대기업에 다닐 때 보다 근무환경 등 모든 조건이 열악하였지만 주어진 일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는 대기업에 다닐 때 대한민국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각오,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안정된 가정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에서 미래의 “금병찬”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가만히 있지 여기서 무엇하고 있는 건지?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 당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안의 나와의 싸움이 시작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두레마을 공동체의 김진홍 목사의 명사초청을 보고 감동을 받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새벽을 깨우리라’ 저자의 책을 샀다. 그때까지 교과서 말고는 독서를 해 본적이 없던 금대표는 단숨에 책 한 권을 읽고 이어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2번이나 자세하게 곱씹어 읽었다.
“끝없이 했던 인생의 고민에 대한 결과물인 정답이 바로 여기에 검증되어 있으니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어요.”
이어서 김병? 교수가 번역한 플루타르크 영웅전 8권을 단3일만에 주야로 읽으면서 인생의 맛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사업이나 정치는 특별하고 뛰어난 사람만이 하는 줄 알았는데 아,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겠다는 강한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금대표는 원래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대학시절 졸업을 하기위한 채플을 필수로 들어야 했던 교양과목이 기독교사상이었는데 채플시간마다 열정을 다해 강의 하셨던 교수님의 신앙관이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이렇게 직장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지 말아야겠다는 고민을 하면서 그 답답하고 막막했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졌다.
“그래 가까운 교회라도 가야겠다.” 금대표의 발길은 중앙동에 있는 안산동산교회였다.
첫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어찌나 큰소리로 열정적인 설교를 하던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설교 시간 내내 빠른 발음과 큰 음성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였고 그저 멍할 뿐이었지만 집에 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산교회 김인중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렇게 적극적이고 정열적으로 살아 본적이 나는 있었던가?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저렇게 살아 봐야겠다.
입술을 굳게 깨물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시스템이 있었다. 제자사역 반에 누군가 신청을 해 주었고 우리부부는 열심히 참석은 했지만 감동이나 믿음은 오지 않았다. 제자반 교육을 받게 되면서 목사님은 새벽 5시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는 숙제를 내주는데 자꾸 숙제 때문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아침잠이 무척이나 많았던 그에게 불가능이었다.
그 당시 소화불량으로 건강도 엉망이었고 삶의 의욕도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숙제를 하기위해 새벽기도와 조깅을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더니 건강도 회복되고 제자훈련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나의 삶과 신앙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으며 새벽기도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나를 구원하셨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김인중 담임목사의 열정과 믿음이 내게도 영적으로 교감하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생활에 활력이 넘치고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생겼다고 인생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조깅과 새벽기도는 쉬지 않았다. 그렇게 달리기에 자신이 생기고 마라톤 풀코스에 5번이나 도전하여 완주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문학도의 깊은 지식, 사업의 발판이 되었다.
“재취업을 해서 열심히 개발 담당으로 일을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했던 시절, 20페이지 논문 번역을 해보라고 했어요. 몇 번을 읽고 겨우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제품에 대한 구성은 전혀 파악이 안 되었어요. 외국에 살고 있는 논문 저자와 연락을 해서 제품에 대한 성능, 품질에 대한 조언을 받아 완전하게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는 보고서를 6개월 만에 완성하게 되었어요.
”
하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 제품이기는 하나 회사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라 는 경영진은 획기적인 제품에 대해 눈여겨보지 않았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제품으로도 경쟁력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굳이 새 제품개발에 투자를 안 하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절망에 빠졌다.
그 후 1달이 지난 어느 날 자동차의 소음과 열을 차단하는 좋은 제품을 개발 안하고 뭐하느냐고 거래처에서 문의가 왔다.
그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얻어 사업을 시작하게로 한 것이다. 논문에 의거한 과학적인 근거로 생산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은 국내에서는 금대표 말고는 개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결국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1995년 시화공단에 우진폼테크주식회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자동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각종 소음과 열 차단을 하는 천연소재 부품 개발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2차 협력업체로 자라 잡았다.
“아마도 좀 더 사업에 욕심을 내고 집중해서 했더라면 1차 협력업체가 되었을 겁니다.
”
그렇게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불처럼 확장되던 어느 날 화재가 발생해서 회사가 완전 전소가 되고 말았다. 절망감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은 신앙적인 믿음과 독서를 통해 자아 성찰과 “할 수 있다!”라는 강한 신념 때문이라고 했다.
사업은 날로 발전하게 되었고 내가 개발한 제품은 대기업인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는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독특한 불굴의 창업정신으로 회사가 성장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저 높으신 분이 지켜주셨으며 가족들과 믿음의 형제들의 기도에서 원천적인 힘이 아니었나 싶다.
실질적인 봉사는 사회를 우리해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기 전까지 나는 진정한 봉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기도를 하지 말고 돈을 벌면 사회를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섬기는 데 쓸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뜨끔하였습니다.”
금대표가 말하는 봉사는 보여 지고 형식적인 봉사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과 어려운 처지를 공감해주는 것, 상대방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 어려움 중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섬김의 실천 봉사라고 강조했다.
“남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으로 부터 실천하는 믿음의 봉사부터 시작 했다.그 당시 나 자신에게는 그것이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힘들게 사업해서 어려운 단체나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후원을 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한두 번에 그치고 말지만 금대표는 지금까지 숨은 봉사를 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매달 각지 후원하는 10여 곳에 개인이나 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다. 사업이 급성장을 하는 시기에 중국에 공장도 세우고 100여명의 직원들과 회사를 경영 할 때는 큰 금액으로 후원도 많이 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그는 독서를 통해서 채득한 것 같다. 수많은 종류의 책 속에는 지식도 있겠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처신과 행동 그리고 덕목을 가슴 깊이 습득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사람과 사람관계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답습하듯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키우고 지식을 쌓아 놓는 것은 언젠가는 이 사회를 위해 뜻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마지막 봉사는 곧 정치이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을 해야 사업에서 승부가 납니다. 그런데 나는 사업을 하면서 정치를 하겠다는 작은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으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성장 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아이템으로 20년을 버티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업은 현상 유지할 수 있으므로 직원 가운데 후계자로 양성 중에 있으며 이제 나는 사업 전선에서 물러나 큰 정치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려고 철저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군포에서 살고 있는 금병찬 대표는 제2의 고향이 분명 군포이며 군포시민인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고 결심했던 정치가의 꿈을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단단한 각오로 도전할 일이다.
무조건 사업을 시작한 것처럼 2008년 정치도 실전으로 들어가자는 마음으로 출마해서 실패했고, 2012년 다시 총선에 도전하여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또다시 본선주자로 나서지 못했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정치적인 경험을 축척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되었다.
“내 인생의 정치적으로 두 번의 실패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확실하게 봉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 한다” 그는 철저한 준비로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 수 있는 국가관으로 일하겠다는 확고한 각오가 서 있었다.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한 그의 모습을 보면 정의감과 타협하는 포용력으로 강한 리디십을 발휘하는 잠재적인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 같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금대표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정해 놓은 것 같았다.
봉사와 희생은 자신을 버려야하고 그러한 정신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의기투합에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군포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지역발전 모델을 꾸준하게 생각하고 설계해왔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군포발전연구소”를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창립하여 살기 좋은 도시, 정감이 넘치는 도시, 낙후된 곳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들을 시민들과 함께 하면서 걸어가고 자하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금대표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인내와 집념의 사람,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리와 신뢰를 중요시 생각하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온 원동력은 지인들과의 인간관계가 돈독했음을 볼 수 있었다. 한 우물을 끝까지 파듯 20여년을 한결같은 강한의지로 사업체를 단단한 반석위에 세워놓은 능력 있는 사업가, 정의로운 사람 “금병찬 대표”의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끌림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윤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