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철학은 행복과 감사이다.
목회를 하면서 언제부터인가는 무겁고 짐스런 철학보다는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고 무겁게 눈물 없이 못가는 것이 목회의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열어가는 힘은 신앙을 근본에 두는 일이지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이들을 은혜의 장으로 함께 길을 걷는다는 사명이 나에게 있다.
사역자라면 그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교회를 세 번이나 건축하면서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이루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협력하는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항상 행복한 목자였음을 고백한다.
목회자는 항상 기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며, 행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목회철학을 정리했다.
사회봉사는 곧 사랑의 실천이다
세상 속에서 이웃과 어깨를 나란히 맞추고 걸어가는 몫은 목회자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주민자체센터 주민자치위원장을 엮임 하면서 이러한 봉사를 꼭 해야 한다는 것 보다 그것은 하느님의 인도였고 목회의 한 과정이었다.
세상 속에서 주변의 관계 속에서 지역사회와 활동이 많아졌고 더불어 교회 안의 활동도 훨씬 활발해졌다.
교회 안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소통하며 활동했던 그때부터 교회사역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목회자들의 전도라는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중요성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주민과 관계를 편하게 유지하게 되었다.
이웃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우선적으로 하였기에 “교회 갑시다.”라고 하지 않으니. 주변에서 목사님은 “교회 가자고 안 해서 너무 편하고 좋아요.”라고 말들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국 교회 나오신 분들이 많아졌다.
즉 인간관계 속에서 시간이 좀 더디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전도가 이루어진 셈이니 정말 감사할 일이다.
결국 부답을 주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런 전도가 이루어졌다.
목사신분보다는 일반적으로 공적인 일을 하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소통의 시간을 두고 일을 하다 보니 그것이 바로 전도의 지름길이었고 부담스럽지 않는 관계 속에서 지혜롭게 전도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늘 푸른 상록수 용신교회의 설립
처음부터 안산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온 것은 아니고 교회 개척을 위해서 어떤 지인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
이곳은 ‘상록수’라는 소설 주인공이 활동했던 무대이고 지명에 따라 주인공 이름 용신으로 교회이름을 지었다.
미래,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미래 교회 사역으로,
다음 세대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회활동을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를 돌보는 교회사역을 병행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사모가 사역하는 어린이집은 교회건물이란 시설의 한계는 있지만 훌륭한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보살핌으로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평가인증제를 받았으며 우수한 교육시설로 인정받아 우리어린이집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대기자 있을 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
또한 지역아동센터도 자부가 책임감 있게 잘 운영하고 있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사역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용신이라는 이름을 두고 지인들이 농담 삼아 “용을 믿느냐?”라고 웃기도 하지만 용신은 그야말로 단순하게 지었다.
상록수역 이전에는 가명역이 용신 역이었고 개통되면서 그 이후로 상록수역으로 바뀌었는데 용신역이었을 때 교회가 설립되었기에 더 망설일 이유 없이 용신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후 교회 이름을 두고 질문을 많이 하기에 ‘용신’이라는 단어를 찾아본 결과 ‘믿음의 얼굴’이라는 희망적인 뜻도 담겨 있어서 용신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한문성경 속에 용신이라는 이름이 나와 있기도 하는 등 모두 모아 풀이를 했더니 결국 ‘용신’ 이라는 이름이 매우 좋은 뜻을 가진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 여겨진다.
목회자가 추구하시는 사회에 대한 생각
관계전도를 배우고 나니 믿지 않는 분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함을 알았다. 어느 순간 교회와 지역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즉 아무리 큰 교회라 하더라도 지역에서는 아무 관심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더란 이야기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과 시민들과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교회사역을 하면서 지역 봉사를 통해서 결국 동네 유지가 되었다.
말하자면 지역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과 공무들과의 관계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민화식 단원구청장이 우리교회의 성도가 된 것은 그 당시 지역을 잘 섬긴 열매의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사회가 비록 등을 돌리더라도 교회는 등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는 혼자만의 독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가 소통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위로가 되며 힘이 되어줄 사람,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웃의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난번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어린학생들이 희생을 당했다. 우리는 내 자식처럼 아파했고 이들을 위해 아픔을 같이 했다.
안산시민 그 누구나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 해 줄 것은 없었지만 유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가슴아파하는 그래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며 서로가 노력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 즉 봉사를 통해서 밝은 사회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청년, 꿈은 목회자였다
청년시절 이웃집 선배로부터 “교회 한 번 나가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교회 한 번 나가볼까.” 했던 것이 목회자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처음 교회에 갔던 날 그 어떤 곳보다 가장 좋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 생애 그 어떤 것도 교회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성적이고 순수한 정서를 지녔으며 서울 토박이로 청년시절 예수님을 만나면서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 좋은 곳이 교회였기에 그 후 한 길을 달려왔다.
나는 지금 행복한 목회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나 행복한 목회자이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목회자
얼마 전에 회갑예배를 들였다. 사람들은 무슨 회갑잔치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뜻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결혼 한지도 34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두 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그들이 여덟 명의 손자 손녀와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일인가, 그래서 다복한 우리가정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회갑잔치도 아들 둘이서 준비한 행사였다.
결혼생활 내내 서로를 칭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부부는 부모역할을 서로에게 하였다.
그 결과 지금처럼 두 아들도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즉 감사할 줄 아는 사람,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다음세대를 책임질 줄 아는 가정을 이루는 부부가 되었다.
창세기1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첫 번째 말씀이 인간에 대한 자손에 대한 번성의 복을 주었다. 돈보다 출세보다 근원적인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했다.
자손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복이며 선물인 것이다.
대가족이 함께 살다보니 고상한 모습으로 살 수는 없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도 아니고 음악을 듣고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추구할 수도 없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를 연상하면 바로 꿈의 동산이며 행복이 넘치는 우리 집안의 분위기이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며 서로가 서로를 다독거리고 아껴주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아침이 늘 기다려진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떠드는 하모니는 삶의 비타민이요, 우리가족에게 주신 축복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해야 하고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고 가족(자손)에 있다. 멀리서 보면 다들 위대해 보일지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행복한 고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누굴 만나든지 행복했으면 좋겠는 바람을 하게 된다.
우리가문에 나를 이어서 큰 아들도 목사가 되었다. 더욱 의미가 있고 둘째 아들은 교사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 아들이 가난한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아내의 내조로 신앙 안에서 우리 부부의 참되게 생활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며 행복한 길을 걷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제 두 아들도 아브라함 선지자처럼 대가족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기에 이 사회에 작은 불씨로 살아 갈 것이라 믿는다.